2009년 10월 27일 화요일

심성락-50년 만의 데뷔 "내 인생은 지금부터다."

 

 

 

 

 

 

 

 

 

 

 

 

 

 

 

 

 

 

잘려진 새끼 손가락과 난청을 딛고 최고의 연주자가 되다.

 

연주자, 혹은 뮤지션으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타고난 음악적 감각? 천재성? 혹은 그에 상응하는 노력?

 

그러나 그에 앞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는 바로 ‘연주하기에

 

적합한 신체적 조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 74세 노구의 연주자가 한 사람 있다.

 

그의 이름은 심성락. 1936년 일본 교토 출생. 해방 이후 귀국하여 고교 시절 부산 악기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아코디언을 손에 잡은 후 독학으로 아코디언 마에스트로로 성장한 연주자.

 

그는 어릴 적 불의의 사고로 왼쪽 새끼 손가락의 한 마디가 없다.

 

게다가 한쪽 귀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연주하기에 적합한 신체적 조건’과는

 

거리가 먼, 아니, ‘연주자로 대성하기엔 너무나 어려운 신체적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TBC, 부산MBC, 부산 중앙방송 등의 프로그램에서

 

전문 세션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서서히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전면에 등장한다.

 

한 번도 정식으로 아코디언 교육을 받아본 적 이 없었기에 정통파와는 거리가 먼 그의 연주

 

스타일은 남진, 나훈아, 최백호, 심수봉, 조덕배, 신승훈, 김건모, 이승철 등 국내 대중음악계의

 

대가들로부터 ‘노래하는 아코디언’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독특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생활 50여 년 간, 그는단 한 번도 자신이 무대의 중심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는 늘 남을 빛나게 해주는 존재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왔고, 그 자신 역시 본인의

 

역할은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바람. 그래, 내 인생은 마치 바람 같았어. 바람 같은 인생의 바람 같은 앨범 하나 만들고

 

싶었던 게 사실이야.” 심성락의 50년 만의 데뷔 앨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타이틀은 이렇게 만들어 졌다.